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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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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7
조회수 2413

송도 산업기술문화 콤플렉스 조성사업의 첫 그림

박진호 : 오늘은 유난히 날이 찹니다. 특히 송도 바람의 위력이 대단하네요. 먼저, 저희가 오늘 송도에서 볼 프로젝트는 어떤 겁니까? 간단히 소개를 해주세요.

오섬훈 : 송도 산업기술문화 콤플렉스(Complex) 조성사업(이하 송도 ITC 콤플렉스)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송도국제도시 2공구 테크노파크 내 부지에 기존의 갯벌타워, 시험생산동, 본부동과 연계하여 벤처업무 A동, 벤처업무 B동 두 개동을 신축하고 통합된 광장시설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에요. 시험생산동은 무영과 희림이, 갯벌타워는 삼우와 공간이 한 것이고요.

박진호 : 전에 이 턴키의 계획안을 모형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좀 과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브릿지도 있었던 것 같고, 건물의 높이도 현재보다는 더 높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전반적으로 모형과 차이가 꽤 있는 것 같은데요?

오섬훈 : 바로 보셨네요. 벤처업무 A동은 뒤로 꺾여 기울어진 부분을 세우고 높이를 낮췄어요. 저층부의 랜드스케이프 계획도 많이 바뀌었고요. 그 과정에서 브릿지도 없어졌지요. 턴키는 일단 당선이 되고 나면 비용의 문제와 부딪히면서 힘들어지는 부분이 많아집니다.

박진호 : 그렇다면 원래 계획안은 어떤 아이디어를 담고 있었습니까?

오섬훈 : 전체 배치에 있어서 두 가지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지하철 입구에서부터 벤처A동에 이르는 곳까지 다양한 이벤트가 생길 수 있는 테마 스트리트 조성 개념이었습니다. 프로그램적으로 휴게, 식당, 미디어 실험실, 선큰 광장, 참여업체들의 전시 갤러리 등이 길과 함께 구성되도록 했습니다. 즉 지하1층에서 시작한 공간의 흐름이 A동에 이르러서는 지상1층과 2층에서 연결되도록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입체적인 랜드 스케이프를 조성함으로써 주변의 중앙공원과 시설녹지와의 관계 설정에서도 자연스레 시각적으로 연결되도록 했습니다. 중간에 있는 도로와 차 소음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구릉지 형태로 계획을 했습니다. B동을 대지 경계에 인접해 있는 시설녹지와 시각적 연계성을 도모하고 광장에 열린 남향을 제공하기 위해서 3개층(약12M)를 띄워서 계획했습니다. 마지막으로 A동의 타워는 기존의 갯벌타워와 대비시키는 조형 개념을 잡았습니다. 조형에 있어서는 사각BOX에 비해 다각형의 동적인 형태를 취했고 스킨에 있어서는 갯벌타워가 여러 켜의 스킨을 시도했다면(유리, 철판, 롤스크린, 포켓옥상정원) A동은 동적인 조형의 취지를 살려 1층에서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수직적으로 표피의 투명도를 변화시켜 수직 상승의 변화감을 가지고자 했습니다.

박진호 : 테크노파크 조성 당시 지하철과의 연계가 상당한 이슈였던 것 같은데,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합니다.

오섬훈 : 쭉 걸어가다 보면 선큰 레벨과 만나게 되어 있어요. 본동 건물의 위치에 따라 지하철로부터의 거리가 정해지니까 처음에는 배치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좀 거리를 길게 두어서 그 사이에 여러 장치를 하면, 그러니까 스트리트 몰(street mall)처럼 하면 했지만, 여러이유로 지금과 같은 큰 선큰가든을 중심으로 하는 계획으로 바뀌었습니다.

 

삭제된 부분에 대한 아쉬움

박진호 : 광장 부분의 변경이 좀 많은 것 같네요. 원래 두 동의 건물은 연결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경사로를 통해 B동에서 직접 A동의 2층으로 진입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 실현되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바깥쪽 도시 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건물들과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었을 것도 같고요.

임재용 : 또 벤처업무 A동 꼭대기 층에서 내려다 볼 때는 광장 조경의 선들이 다양하게 느껴져서 무척 즐거웠는데 아이 레벨(eye level)에서는 굉장히 플랫(flat)하게 보였어요. 실제로 걷다 보면 조금 심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조금씩 레벨차를 두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오섬훈 : 원안의 랜드스케이프가 변경되는 바람에 입체적인 느낌이 많이 퇴색되었지요.

박진호 : 벤처업무 B동은 선큰 공간과 어떤 연계를 가집니까?

오섬훈 : 지하층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 또한 경사로를 이용, 1층에서 연결되도록 계획이 되었던 부분입니다. 중간에 원형으로 뚫린 부분에는 원래 계단을 두었고요. 아무튼 공간적으로나 입체적으로 삭제된 부분이 많습니다. 건물의 규모가 커지니까 저층부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들, 디테일들을 놓치게 되더라고요. 또 발주측에서 외부 공간에 대해서는 심플(simple)하게 갈 것을 원하기도 하고, 공사비 문제도 있고……. 당선 되고 나서 저층부에 대한 클레임(claim)이 바로 들어왔지요. 발주처도 그렇고 시공자도 그렇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안 되더라고요. 가운데 중정만 남은 격이에요.

 

유리 스킨에 대한 고민

박진호 : 내부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우선 벤처업무 A동의 로비에서는 텐션 케이블(tension cable)이 조금 눈에 거슬립니다. 원안의 수직적인 것에 비해 다소 수평적으로 설계된 것 같은데요.

오섬훈 : 양을 줄이다 보니 그런데, 덜 텐션해 보이죠?

임재용 :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외국에서는 저런 대형 유리 창호를 디자인하면 오브 애럽(Ove Arup) 같은 회사에서 디테일이나 기술적인 문제를 정리해 주잖아요. 그런 면에서 우린 참 불행한 것 같아요. 유리를 잡고 있는 구조도 일정 부분 기여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구조 쪽에서 먼저 디자인을 하다보니까 유리 업체에서 만들어 오는 텐션 케이블 같은 저런 구조물의 역할은 다 빠지고 기둥이나 다른 부재가 뒤집어쓰게 되는 거죠. 부재가 두꺼워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구조를 디자인해 주는 것이 아니라 풀기만 하니까 그런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오섬훈 : 솔직히 저도 이 공간에 들어오면 조금 불편합니다. 여기에는 여러 사람들이 관여되어 있지요. 저 이외에도 공간, 인테리어 회사, 발주측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를 해야만 했어요. 한 사람의 의지만 반영될 수는 없었죠. 맘 편하지는 않아요.

임재용 : 밖에서 보면 유리 외피 안의 희고 큰 콘크리트 구조체들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철골 구조에 대한 생각은 없으셨는지요?

오섬훈 : 구조 심의 과정에서 진동을 우려한 구조 전문가의 제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진동에 약한 철골 대신 RC 구조로 하게 되었고요. 갯벌타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여기는 색깔마저 흰색이어서 시각적으로 더 크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박진호 : 요즘 건물을 보면 대개 유리를 많이 쓰지요. 송도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에너지 관련 건축가는 아니지만, 송도에서의 유리 파사드는 시야가 트여서 좋은 반면 에너지 손실을 생각하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섬훈 : 유리를 사용하는 방법을 계발시켜야 할 거예요. 벤처업무 A동은 유리에다가 실크 프린트를 했는데, 열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갯벌타워의 경우는 유리면 안쪽으로 펀칭메탈과 블라인드를 두었지요. 그런 사용 방법들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아쉬운 것은 공사비 문제로 실크프린트를 이용하여 벤처업무 A동의 스킨에 부여하고자 했던 상승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길과 이벤트

박진호 : 원안에서는 단지 내는 물론이고 전체 도시와의 연계를 염두에 두셨던 것 같습니다. 도시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요, 사무실 이름이 어번엑스(UrbanEx)인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까?

오섬훈 : 엑스(Ex)는 '…으로부터'란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도시로부터, 사람 사는 곳으로부터, 여러 사람 모여 있는 곳으로부터라는 의미지요. 언젠가 글에서도 썼지만 현대사옥 옆길, 즉 중앙 고등학교 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보면 도시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돼요. 그 작은 길은 건축적인 스케일도 되지만 어떤 면에서는 도시의 스케일이 되기도 합니다. 주택, 학교, 사옥, 가게들이 퍼블릭(public)한 길을 따라 늘어서 있음으로 해서 이 길은 다양한 성격을 갖게 되지요. 즉 이 길은 아침의 등굣길이나 오후의 퇴근길, 정오의 벼룩시장, 오후 중간나절의 한가로운 길, 저녁의 주점길 등으로 상황 변신이 가능합니다. 길 양쪽으로 어떤 프로그램들이, 어떤 장치들이 설정되느냐에 따라 동일한 면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기대할 수 있는 거죠.

임재용 : 2003년도에 성신여대 2부관, 한성대학교 도서관 등의 작품으로 오소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소장님의 화두가 노매딕스(Nomadics)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벤트와 연속적인 흐름에 대한 개념도 그렇고요. 여전히 당시 개념의 연장선상에 있는 건가요?

오섬훈 : 들뢰즈(Gilles Deleuze)가 이야기하는 철학적 의미의 노매딕스도 있겠지만, 저의 개념은 단지 건축적인 번안입니다. 그것으로 현대의 길을 이야기한 거지요. 간략하게 정리하면, 한 장소지만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고 시간에 따라서 다른 장소로 변할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길의 양 옆에 최소한의 건축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에요.

임재용 : 거기에 저의 짧은 비평글도 실렸죠. 그러면서 뭘 하시려고 하는지는 분명히 읽었던 것 같습니다. 단지 저는 그것이 외부 공간이나 길의 문제가 아니라 건물 내부에까지 충분히 끌고 들어올 수 있는 개념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송도의 경우는 과연 그것이 내부에까지 연장이 되어 엮여졌느냐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원안처럼 브릿지가 2층에 딱 꽂혔다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죠.

오섬훈 : 노마딕스라는 개념이 한 장소의 성격에 한가지로 고정되어 있는 것 보다는 도시의 공공의 성격에서는 최소한의 장치를 해주면 그 장치속에 같이 참여하는 사람들과 프로그램들이 작동하여 또 다른 의외의 결과를 낳을 수 있어서 장소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해주고 다양한 성격을 가지게 해준다면 초기의 테마 스트리트의 계획이 이 노마딕스란 개념에 많이 근접한 아이디어 였는데 앞서 몇 번 언급한 것처럼 변질이 되어 아쉽습니다. 턴키에 모형을 제출했는데 모형제작 스케일 때문에 구릉지처럼 생기고 구멍 뚫리고 입체로 생긴 그런것들이 이상하고 답답하게 읽힌 모양이예요. 그런 걸 설명하기가 참 힘들었어요. 랜드스케이프를 따라 올라가면 답답하다가도 어느 순간 확 트이잖아요. 건축 전공자가 아니면 그건 잘 모르는 거죠. 단지 시공자의 입장에서는 랜드스케이프를 계획대로 하게 되면 공사비가 늘어날 뿐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왜 이렇게 변명만 늘어놓게 되지요?(웃음)

 

턴키 디자인의 딜레마

박진호 : 턴키 당선 후 건설사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보통 디자인 변경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건축가의 자존심도 많이 구겨질 것 같은데요. 구현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건축가가 제일 가슴이 아프겠지요.

오섬훈 : 그렇죠. 그 회사와 다신 일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임하지 않을 바에는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밖에 없죠. 핑계 같지만 사무실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쉽게 용기를 낼 수도 없고요. 일산문화센터를 할 때였는데, 문화회관이 무슨 박스냐, 공연장에 한국의 전통성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바꾸라고 해서 한참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설득을 해서 그냥 계획안대로 가긴 했지만, 송도 ITC 콤플렉스의 경우는 건설회사 측에서 공사비를 들고 나오니까 얘기하기가 굉장히 애매하더라고요.

기회가 흔치는 않지만 끝까지 잘 챙겨서 공사가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송도의 경우는 디테일 단계에서 거의 손을 놓아버린 상태였어요. 잘 아시겠지만 디테일을 하나 고치려고 해도 설비나 구조를 다 건드려야 하잖아요. 여러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옵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그렇지 않고서는 마지막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분당 자동차 전시장은 이중외피인가?

박진호 : 분당 자동차 전시장으로 이야기를 옮겨 봅시다. 외피가 펀칭메탈(punching l)이군요. 이중외피(double skin)의 개념인가요?

오섬훈 : 대략 60cm 간격의 안쪽으로 유리 마감된 부분도 있고 패널 마감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이중외피의 개념은 아닙니다. 1층은 자동차 전시장(Mercedes Benz)이고 그 윗부분은 주차장이에요. 3층에는 정비실이 있고요. 정비실 부분은 이중외피로 되어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아닙니다.

임재용 : 처음부터 디테치(detach)하는 개념을 고려하지 않으신 건가요? 이중외피 부분도 사이 공간에 대한 인지가 잘 안되던데요.

오섬훈 : 이중외피에 대한 생각은 애초부터 있었습니다. 유리면은 어차피 바깥 공간이니까 메탈 부분을 스커트처럼 살짝 띄워 놓고 싶었어요. 어떤 부분은 이중외피가 아닌 타공판으로 마감되어 있지만 안이 들여다보이고 안쪽의 스킨이 읽혀지는 것을 생각했지요. 설계 과정에서 5:1 모델을 만들어 프리젠테이션(presentation)까지 했습니다. 구멍의 지름을 10cm 뚫으니까 뒷부분이 인식되더라고요. 느낌이 괜찮을 거라고 건축주에게 제안을 해서 펀칭은 하게 되었지만, 밖에서 비추는 경관 조명 때문에 결정적으로 사이 공간에 대한 인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경관 조명 측의 이야기가 펀칭 구멍이 크면 빛이 제대로 먹을 수 없다는 거예요. 결국 안쪽 스킨을 읽기 어렵게 되고 말았지요.

 

해법으로서의 건축

임재용 : 벤츠가 임대하는 건가요?

오섬훈 : 벤츠의 빌딩입니다. 주차장 용도지역이어서 30% 이하만 상업설계를 할 수 있는 곳이죠. 70%는 주차장을 해야 하도록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박진호 : 펀칭메탈이 1층까지 내려오지 않고 분리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섬훈 : 아래의 프로그램과 위의 프로그램이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처음부터 주차장 매스와 전시장 매스를 분리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어요.

박진호 : 형태를 만든 과정이 궁금합니다. 폴딩(folding)된 부분이 눈에 띄던데요.

오섬훈 : 이 건물의 앞쪽으로는 반듯한 형태의 NHN 사옥이 올라가고 있고, 뒤쪽으로는 고급 주거지역이 형성되어 있어요. 웬만한 형태로는 눈에 띄기 어렵겠더라고요. 그래서 제스처가 약간 과장되어 있습니다. 바라보는 뷰(view)에 의해 위의 메탈은 도로와 평행하게 맞춰져 있고 유리면은 정자 사거리 쪽으로 약간 틀어져 있지요. 다른 두 축에 대응하다 보니까 그런 형태가 나왔어요.

박진호 : 솔직히 저는 렘 콜하스의 시애틀 라이브러리나 모포시스의 샌프란시스코 연방정부신축건물의 입면이 떠올랐고, 이 건물의 형태가 그 중간 영역쯤의 제스처라 생각했습니다. 축은 전혀 떠올리지 못했어요. 축을 가지고 그러한 3차원적인 형태를 만들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재미있네요.

오섬훈 : 약간 변형을 주면 사각의 형태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싶었고, 비틀어진 축의 상황에 대응하고자 했던 겁니다.

박진호 : 아래층 유리면이 실제로는 튀어나와 보이던데 위에서 내려오는 펀칭메탈이 유리 표피를 감싸 주면서 떨어졌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내피와 외피 사이의 완충 공간이 다소 아쉽습니다. 도로와 건물의 중간 영역으로서 활용이 가능했을 법도 한데요.

오섬훈 : 유리면을 안쪽으로 좀 밀어 넣었는데 메탈에 비해 생각만큼 들어가진 않았지요.

박진호 : 현실적으로 보면 전시장 면적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을 듯도 해요.

이경훈 : 일단 물리적인 조건을 잘 해결하신 것에 점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자칫 무거워 보일 수 있는 형태를 타공으로 해결하고 아래 부분에는 C.I에 충실한 공간을 만들고 그 사이를 유리의 접힘 같은 것으로 연결을 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자동차 전시장의 C.I와 인지성

이경훈 : 그런데, 개인적으로 자동차 전시장도 매우 재밌는 빌딩 타입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기업과 관련된 건물에 동일하게 적용시켜야 하는 C.I(Corporate Image)의 한계도 있을 거고, 강력한 인지에 대한 요구도 있을 거고……. 모델하우스 건물과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아파트 모델하우스의 외관상 특징은 실제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거지요. 아파트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혹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욕망하는 방향으로. 하지만 자동차 전시장은 가건물이 아니더라고요. 아무튼 럭셔리한 아이템을 포장 혹은 과시하는 것만은 분명할 텐데요, 그에 비해 이곳 매장은 의외의 위치에 들어서 있어요. 강남의 다른 벤츠 매장들을 보면 눈에 띄는 장소에 위치하지 않나요?

오섬훈 : 눈에 띄는 인지성이 필요한게 당연하죠. 그렇지만 대지의 약점을 디자인으로 보완할 필요가 제기되어서 전시장의 전면 외벽유리가 사선으로 위치하고, 전면도로와의 관계에서 디자인 모티브가 한 개 생겼어요. 또 CI방침이 건물 디자인이 완성된 후 변경이 생겨 서로 매치시키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박진호 : 이러한 자동차 전시를 위한 건물은 무엇보다도 시선을 끌어당기는 작업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회사의 마크를 부각시키거나 야간 경관을 이용하여 오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려는 특별한 시도가 있는지요?

오섬훈 : 주변의 고층 건물들에서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옥상에 벤츠 이미지와 관련한 패턴을 찍어주려고 했었지만 공사비 때문에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파라펫의 제스쳐나 조경의 패턴으로 어느정도 보완했어요. 또 4, 5층 레벨에 전시를 할 수 있는 쇼 윈도우를 구상해 놓았는데 아직 내부 마감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고요. 도요다 매장 중에는 카 리프트 꼭대기에 자동차 전시를 해 놓은 것도 있지요.

 

전시 매장 뒤집어 보기

임재용 : 한국의 경우는 외국과 달리 정비실 같은 서비스 공간이 배려되어 있는 게 특색 있습니다. 그래서 얼핏 드는 생각이, 굳이 그 서비스 공간을 험한 꼴로 가려야만 하는가, 라는 것이에요. 그냥 있는 그대로 끄집어내어 보여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수리하는 광경 같은 것을 뒤집어서 보여주는 거죠.

오섬훈 : 저 역시 자동차 전시는 왜 1층에 비슷한 방식으로 할까, 다른 방식으로 재밌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자동차는 사실 실내에 있는 게 어울리지 않죠. 어쩌면 바깥에 놓여 있는 것이 가장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완성한 대치 자동차 전시장에서는 자동차를 실내에 집어넣기는 하지만 최대한 외부에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했지요. 가장 잘 보이게 하는 위해서는 길에다가 차곡차곡 포개놓아도 될 것 같았지만 고객이 와서 시승도 해봐야 하고 또 현실적으로 기술적인 문제도 있고 해서 스킨 자체를 유리로 하여 외벽이 천정과 내벽으로 들어가서 최대한 외부와 비슷한 느낌을 갖도록 하였어요. 분당 자동차 전시장이 프로그램과 주변 상황의 해석에 치중했다면 대치 자동차 전시장은 전시 자체를 생각해서 형태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요. (시공은 인테리어 CI 대문에 조정됐지만)

임재용 : 백화점 설계에서 투명 박스에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보여줘도 좋을 텐데 왜 뒤집지 못할까를 생각해 봤어요. 자동차 매장도 전체를 하나의 디스플레이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시스템이나 메카니즘을 뒤집어보는 것은 저의 관심사기도 합니다. 매 층에 차를 전시하기 힘들다면 그래픽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박진호 : 주차한 모습들을 그대로 디스플레이로 활용하는 것이겠군요.

임재용 : 차를 다양한 각도로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뒤에서도 보고 위에서도 보고 말이죠.

오섬훈 : 하지만 건축주의 80~90%가 익숙한 것을 원하지요. 좀 특별한 것을 하려고 하면 다른 사례부터 묻잖아요. 설득하는 게 어렵죠.

이경훈 : 어디에도 없다, 라는 것이 더 매력적이지 않나요? 차들이 실내에 있는 것은 낯선 광경이죠. 그것을 더욱 낯설게 했을 때 효과가 더 크겠고요. 어떤 오토쇼(auto show)에서 차를 뒤집어 놓은 것을 보았어요. 바닥이 보이게 말이죠. 그런 걸 제안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좀 보수적이긴 해요. 더구나 벤츠 본사랑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딜러의 딜러와 이야기해야 하니까 더 힘들겠죠.

오섬훈 : 신뢰가 쌓이면 건축주도 건축가의 제안을 좀 들어주는 편입니다. 다른 걸 이야기하면 솔깃해서 귀를 기울이기도 하지요. 과정 중에 변경이 많아서 탈이지만 말이에요.

 

스스로를 분류하자면 어떤 건축가라 생각하십니까?

박진호 : 1979년 공간에 입사하여 독립할 때까지 꽤 오랫동안 일을 하신 걸로 압니다. 공간에서 나온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오섬훈 : 이제 3년이 지났습니다.

박진호 : 나와서 일해 보시니까 어떻습니까? 디자인의 자유는 있지만, 나름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챙겨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사업적인 마인드도 갖춰야 할 테고요.

오섬훈 : 여기 임재용 소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큰 조직과 비교해 볼 때 무엇보다도 인적 자원의 차이가 체감되지요.

임재용 : 동갑입니다. 일 자체의 어려움보다도 인력 수급의 어려움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어요.

박진호 : 요즘 대학 졸업생들이 큰 사무소로 몰리는 현상들이 있긴 하지요.

임재용 : 하지만 작은 곳을 선호하는 마니아들도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은 일도 잘 해요.

오섬훈 : 큰 사무소는 동료나 선후배들 사이에서 배우는 게 많다는 이점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요즘은 워낙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어서 큰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박진호 : 아무튼 독립 후 작품에서 특별히 하고 싶은 것,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경훈 : 거기에 덧붙여서 스스로를 분류하자면 어떤 건축가라 생각하십니까?

오섬훈 : 되돌아보면 프로그램을 조절하면서 거기에 충실했던 작업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크고 작은 의미를 찾아내어 간접적으로 프로그램을 해석한다든지, 아니면 분당 프로젝트처럼 위의 매스는 주차장이고 아래의 매스는 전시장이다, 라는 식으로 기능적으로 단순하게 해석을 한다든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프로그램 해석에 따른 구조적 조직짜기가 주요작업방식 이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스킨과 관련된 문제도 그런틀속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두 장의 유리벽 사이에 다른 장치를 집어넣어서 유리벽 너머로 투영되는 제스처를 은근히 드러내거나 미끈한 유리 스킨 뒤로 몇몇 장치 혹은 빛을 이용하여 건물의 표피에 변화를 주는 것 등이에요. 송도 ITC 콤플렉스 벤처업무 A동이나 삼정호텔 입면 리모델링 작업에서 실크스크린 유리를 통해 스킨의 변화를 꾀하려고 했던 것이 최근의 사례고요.

조금 더 나아가서는 구조와 스킨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의외로 재밌겠더라고요. 김인철 선생의 최근 작품처럼 말이죠. 골조가 드러나고 형태와 스킨이 그걸 따라가면 재밌을 거 같아요. 물론 비용이 문제겠지만.(웃음) 어디서 들은 이야긴데 어떤 디자인이든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사회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이라고 하더군요. 실제로 일본에 디자인 붐이 일어났던 시기가 3만 달러 넘어섰을 때라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 싶기도 해요. 우리나라는 2007년 2만 달러를 돌파했던 1인당 국민소득이 환율 때문에 지난 해 1만 달러대로 떨어졌지요, 아마? 그밖에도 규모가 좀 있는 프로젝트에서 공간의 시퀀스(sequence)나 다양성을 만드는 것은 지속되고 있는 관심이고요. 김수근 선생님께서는 '여전히 건축은 공간이다.' 라고 늘 말씀하셨죠. 공간을 어떻게 경험하게 만들 것인가는 굉장히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겪는 행태나 공간을 만드는 툴(tool)은 워낙 많으니까, 공간 자체는 아직도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송도 ITC 콤플렉스 또한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처음엔 나름대로 공간적인 재미가 많은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지요.

이경훈 : 저는 제 스스로를 만약에 분류하면 '모던 원리주의' 정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크리틱(critic)할 때 오소장님을 뵌 기억으로는 저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요즘 굉장히 특이한 건축을 하는, 아방가르드한 부류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기본기 를 가지고 조금씩 실험을 하는 경향이랄까…….

 

상황에 따른, 그에 맞는 건축

오섬훈 :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 그동안의 작업들을 보면 외관에 접힌 부분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하지만 그게 재미있다고 해서 늘 접는 것을 지속해야 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저는 프로그램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요. 단지 접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접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던 거예요. 주변의 상황을 의식한 제스처나 다이나믹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 혹은 재료의 마감 디테일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지요.

박진호 : 그게 디자인 역량이겠죠. 건축주의 요구 사항과 프로그램과 대지 상황을 해결하고 그 위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게 건축이겠지요.

오섬훈 : 늘 쓰던 언어를 계속 쓰느냐 마느냐의 문제에서 보면 선택의 관점이 중요할것 같습니다. 마치 공식처럼 줄기차게 하나의 건축 어휘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닌가, 싶어요. 브랜드(brand)화된 디자인 보캐뷸러리(vocabulary)보다 그 상황에 맞는것을 찾게 되는 거지요.

박진호 : 톰 메인(Thom Mayne)이 예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막 폴드(fold) 건축을 시작했을 때였는데, 프로젝트마다 각기 다른 어프로치(approach)를 가진다고 하더군요.

오섬훈 : 건축의 스케일로 들어오면 보조적인 기능들, 계단이나 발코니 등을 특색 있게 계획하는 것으로 공간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겠지요. 그런 것들이 프로그램 덩어리들을 잘 엮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건축주들은 그러한 여유를 쉽게 허락하지 않지요. 사실 단일 건물로 들어오게 되면 제가 잘 못 풀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런 여유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만한 프로젝트를 못 만난 건지, 잘 안되더라고요. 결국 관심이 프로그램에 의해 달라지는 형태의 문제나 스킨의 문제로 귀착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전략으로 가는 거죠.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는 건축의 오리지낼러티

이경훈 : 공간에서 건축인명사전을 만든다고 5명씩 추천하라는 연락이 온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선발 조건이 있었는데 일단은 오리지널(original)할 것, 또 그 오리지널한 것이 나름대로 일관성을 가질 것이었지요.

임재용 : 전 오히려 일관성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에요.

이경훈 : 물론 매번 새로운 것을 찾겠다는 의지가 있을 수는 있겠죠. 오리지낼러티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임재용 : 마치 도장을 찍는 것처럼 누가 봐도 알 것 같은 건축은 좀 지양하는 편이죠.

오섬훈 : 왜 그걸 지향해야하는 거죠?

임재용 : 개인적인 취향이 아닐까요?

이경훈 :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섬훈 : 공간을 예로 들면, 표피 안에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김수근 선생의 도장을 찍은 거와 마찬가지란 말이에요. 주변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이나 공간에 대한 생각 등은 누구든 은연중에 자신만의 방식을 가지고 갈 수 있겠죠.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걸 브랜드화하고 의식적으로 가지고 가는 것과는 다른 문제겠죠.

이경훈 : 문제는 남의 도장을 찍는 것이죠. 우리 건축의 제일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오섬훈 : 냉정하게 따져보면, 정말 자기 도장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경훈 : 그러니까 왜 없으면서 있는 척하냐는 거지요.

오섬훈 : 자기 도장과 남의 도장이 섞여서 조금씩 발전되어 가는 것 아닐까요?

이경훈 : 간혹 국제설계공모전 PA로 참여해 보면 외국심사위원들이 국내 작품을 보고 오리지널이 아니라는 평가를 내릴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제가 보기에도 그랬고요. 낯 뜨거운 순간이죠.

오섬훈 : 폴드 건축이 아이젠만의 것이라고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초창기의 자하 하디드 것이라고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걸까요? 혹은 유동치는 것은 그렉 린의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요? 건축의 본질이 상황과 프로그램을 해석하고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있다고 한다면 폴드 건축을 하든 유영화된 언어를 쓰든 그것은 단지 기법이 아닐까 해요.

이경훈 : 그런 차원의 정도가 아니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예전에 비해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분들도 그렇고 국내 계신 분들도 그렇고, 훌륭한 분들이 아주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한국에는 외국 건축가들이 더 지배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아마도 오리지낼러티의 문제가 크지 않을까 합니다. 제 생각에는 작은 아이디어라도 정확하게 하는 훈련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들뢰즈 이야기를 하면서, 들고 나온 아이디어는 지난 달 잡지에 나왔던 거고 하는 것이 현실이지요. 저는 들뢰즈를 정말로 이해하냐고 묻고 싶어요.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박진호 : 오리지낼러티에 대해서는 저 역시 많은 고민을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풍토가 과연 그것을 만들어주는 풍토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오섬훈 : 사실 아이젠만의 폴드는 들뢰즈가 말하려는 해방의 가능성을 담보한 '성격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폴드라는 형태일 뿐이지요. 아이젠만 스스로도 잡지 대담을 통해 그걸 밝힌 바 있고요. 그건 나름의 건축 어휘에 대한 오리지낼러티겠죠. 그런 종류의 오리지낼러티를 말하는 건가요?

이경훈 : 그야말로 다른 심급의 문제가 있는데, 건축을 접근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다이어그램을 쓰는 것까지, 사실 다이어그램은 굉장히 혁명적인 아이디어거든요. 분석의 틀로 쓰였던 걸 어떻게 생성의 틀로 쓰냔 말이죠. 아무튼 그런 것도 많이들 따라서 하고 있지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을 접하고 그걸 굳이 사용해 보고 싶다면 적어도 투자와 연구를 통해 그 원리가 어떻게 되는 건지는 알아야 하잖아요. 원리도 모르고 유사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박진호 : 오늘의 주제가 마치 'Originality와 Fake' 같습니다.(웃음)

오섬훈 : 빙 둘러서 저를 때리는 것 같은데요?(웃음)

이경훈 : 오소장님을 비판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저는 그 반대로 오소장님과 임소장님은 말로만 멋진 건축을 하지 않아서 참 좋습니다.

오섬훈 : 멋있는 이야기를 할 줄 몰라요.(웃음)

이경훈 :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작은 아이디어라도 제대로 전개된 건축을 보자는 말이죠. 우리도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언젠가는 누구누구처럼 멋있는 이야기도 하고 그럴 거예요.

 

상황의 인식이냐, 결과물이냐

임재용 : 저 같은 경우는 언젠가부터 제목을 달고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제목만 붙잡고 봐도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를 알아챌 수 있도록 하고 싶은데 쉽지는 않아요. 제목으로 안 되면 심플(simlpe) 다이어그램으로라도 말이죠.

이경훈 : 좋은 이야깁니다. 아이디어가 물리적으로 실현된 예들이 우리 건축에는 부족한 것 같아요. 거대한 철학적 담론보다도 이러한 생각들을 실현시키는 작업을 많이 보여주는 것은 학생들에게도 중요하지요.

임재용 : 김수근 선생의 경동교회 옆에 프로젝트를 하나 했습니다. 그런데 경동교회 바로 옆이라는 게 두렵더라고요.(웃음) 프로그램은 아래가 주유소이고 그 위로 사옥이 올라가는 거였죠. 경동교회를 열심히 들여다보니까 떠오르는 이미지가 침묵과 무거움이었어요. 어차피 같은 무거움으로는 게임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일단 가볍게 가기로 했죠. 하지만 침묵은 또 괜찮은 거 같더라고요. 결국 가벼운 침묵을 컨셉트로 정했지요. 뭐, 다른 게 있나요. 저는 건축은 상황의 인식이라고 판단해요. 구법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정확하게 상황을 인식하면 그대로 나타나게 되거든요. 아무튼 땅의 문제든 문화의 문제든 경제의 문제든 이 상황이 뭐냐를 정확이 인식하면 해답이 있다고 보지요.

이경훈 : 상황을 충실히 해결하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고, 또 그것을 좋은 건축으로 자꾸 읽어줘야 할 것 같아요. 그 이상의 뭐가 있는 거처럼 이야기하다 보면 오히려 허점이 드러나고 마는 거죠.

박진호 : 하지만 건축가마다 차이가 분명히 있을 텐데요. 만약 다른 건축가였다면 분당 자동차 전시장의 외피를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임재용 : 개인적으로 이중외피의 개념이라면 벽체가 똑바로 섰든 기울어졌든 같아 보입니다. 그 상황에서 이중외피를 설정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요. 이중외피의 도입에 대한 상황 인식에 관심이 있는 거죠.

오섬훈 : 임소장님의 생각도 일리가 있지만, 다이어그램을 예로 들면, 다이어그램을 고를 때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있을 듯해요. 또 고른 다이어그램에 따라 결과들도 다를 테고요. 건축은 어찌됐든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결과물을 도출하게 해준 원인이나 작용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겠죠. 초기의 인식에 대한 것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똑같은 인식이어도 상황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똑같은 프로그램을 똑같은 장소에다가 다른 시간에 설계를 했으면 같을 수 있을까요? 다를 거란 생각이 든단 말이죠. 어쨌거나 결과물들은 사는 사람이나 도시에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 결과물 그 자체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건축계에 필요한 일들

오섬훈 : 거대 이론이 전혀 필요 없는 건 아닐 거예요. 뒤에서 건축가의 작품 이론을 가이드 해주는 그런 장치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진호 : 제 생각으로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가든 누구든 그건 상관이 없고, 사회가 좀 지원을 해야 할 겁니다. 물론 건축가들도 소신 있는 작업을 해야 할 테고 말이죠.

이경훈 : 디테일의 연구 또한 필요한 일입니다. 요즘 대형사무소에서 디테일 연구를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외주를 주는 시스템이니……. 건축에서 자신들의 일은 투시도까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박진호 : 어번엑스 같은 아틀리에 사무소에서 그런 디테일들이 나와 주면 우리 건축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요.

오섬훈 : 작은 설계사무소 네다섯 군데를 묶어서 지원하는 엔지니어링 회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구조든, 설비든 말이지요. 개별적으로 괜찮은 엔지니어 회사를 구하기 쉽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 규모가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고요.

이경훈 : 학교에도 문제가 있겠죠. 리서치를 한다거나, 뭔가 건축계를 선도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학교가 오히려 사회에 끌려가는 형국이니까 조언을 할 수 없는 거지요. 외국을 보면 학교에서 하는 것들이 몇 년 후에 실현되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실현된 걸 보고 학교에서 따라가니까……. 아무튼 그러한 특면에서 보면 오소장님의 접근 방법은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상당히 중요할 것 같아요. 흔히 건축가들은 물리적인 문제의 해결에도 마치 굉장한 컨셉트가 있는 것처럼 설명을 하잖아요. 비평가들이 또 그렇게 쓰고요. 그래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설명할 때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죠.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념적인 성향들이 합쳐져서 교외별전(敎外別傳) 같은 행태를 보이기도 하지요. 거기에 비해 솔직한 태도로 답변하는 것이 오섬훈 소장님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송도컴플렉스(상)/분당자동차전시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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