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계천과 바르셀로나의 방커드카멜 (Bunker del Carmel)
1930년대 후반의 스페인 내전 때 레지스탕스의 아지트였던 카멜방카언덕은 높은 곳에 위치한 덕에 바르셀로나 야경을 보려고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찾는 곳이다.
작년에 가족여행 갔을 때 바로셀로나에서 들러야 될 곳의 한 장소로 선정되 있었다. (둘째딸이 여행코스를 정해서 난 사전정보가 없던 상태로 갔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150여미터는 도로와 주변집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집들도 각기 개성이 있어서 구경삼아 재미있게 올라갔다. 꼭대기 즉 카멜방커언덕에 다다랐을 때 올라오는 길목과는 또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야경구경하기 좋은 언덕으로만 상상했었다)
폐허된 집터에 남아있는 벽체, 몸을 숨겨서 총을 쐈을 것 같은 작은 구멍이 뚫린 벽들, 용도를 잘 알수는 없으나 중정처럼 생겼을 것 같은 마당과 큰 구멍뚫린 벽으로 에워싼 곳, 곳곳에 산재해 있는 너럭바위 같은 큰 바위들... 그리고 땅 표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들어가면 토굴같으나 바르셀로나 시내를 향해 창들이 나있는 레지스탕스의 아지트.. 입구 계단을 감추는 철판을 덮으면 입구조차 찾을 수 없는 장치.. 그 내부는 옛날 아지트의 구조를 유지한 채로 최소한의 설명을 위한 장치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땅위의 다양한 형태의 구조물과 장소.. 또 땅속의 요새같은 생활근거지..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잘 드러나 있고 유지되므로써 당시 스페인 내전상황을 떠올리는 매개가 되는 장소임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런 곳에 가면 늘 머리에 떠오르는 곳이 서울의 청계천이다. 2000년대초에 당시 시장이 청계천 고가도로 철거하고 복개된 청계천을 원상태로 복원한다고 했다. 우연한 인연으로 청계고가의 철거작업 초반에 단국대 김정신교수와 학생들과 청계천 내부를 답사하게 되었다. 동대문에서 시작하여 청계1가까지 거슬러 올라오는 루트였다. 주의사항을 듣고 땅속으로 내려갔다. 아.. 여기가 어딘가.. 불과 4, 5미터 내려왔을 거 같은데 .. 청계천의 폭이 3, 40미터는 되어보이고 바닥에는 웬 거석들이그렇게 많이 널브러져 있는지.. 온몸에 전율이 감돌았다. 순식간에 시간이 5~600년 뒤로 간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너무 뜻밖의 장면을 맞닥뜨렸다. 15년쯤 지났음직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로마나 아테네의 어떤 폐허의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같은 것이었다. 오간수문(동대문 옆의 서울 성곽아래 위치해서 청계천의 물이 빠져나가는 곳이었다)의 기초로 쓰인 거석이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간수문이 있던 곳이라 폭이 넓다는 설명이 들려왔다. (그 오간수문은 위치도 다른 곳에 복원되어 있고, 그 기초돌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청계1가쪽으로 올라오는데 곳곳에 옛날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어떤 곳은 큰 바위를 주춧돌삼아 청계고가의 기둥이 세워져있고, 또 어떤 곳은 당시 청계천을 건너는 다리중 상판만 없고 바닥에 놓인 주춧돌과 그 위에 세워진 화강석기둥 대여섯개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곳 (광통교인지 모전교인지?)도 있었다. 그나마 청계천 복개공사때 철거했던 수표교는 원형을 유지한 채 장충단공원에 있다. 청계천의 홍수수위를 측정하는 수푯돌은 세종대왕기념관에 가있다고 한다.
군사정권시절이라 빨리빨리 고가도로 건설한다고 그 아래 청계천은 그대로 두었을 것으로 짐작해본다. 오히려 보존이 그런대로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당시 시장은 본인 임기내 빨리 완성한다고 이 모든 것을 걷어 치워버렸으니.. 그 몇백년의 흔적과 유산을! 서울, 아니 한양의 또다른 생활인프라를! 지금의 청계천은 도심지에 있는 물이 흐르는(그것도 한강에서 퍼오는 물과 약간의 인근 지하수) 분위기 좋은 공원에 불과하다. 청계천은 그런 곳이 아니다 !
한양의 생활중심지였고 물길의 흐름을 담당하는 중요한 600년 역사도시의 인프라였다. 서울은 지금 도시재생과 큰 틀을 짜는 중이다. 종묘와 창경궁연결, 서울 성곽회복을 비롯해 세운상가 리뉴얼 등등... 현재의 물리적인 환경 뿐 아니라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청계천도 리뉴얼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표교도 제자리를 찾고, 광통교인지 모전교인지 남아있던 다리의 기둥이나 오간수문의 기초 등의 유구도 제자리에서 드러나야 할 것이다. 물론 건축이나 도시시설물이 시대가 변하면 원래의 기능이 유지되기 어렵고 변할 수 있으나 그간에 쌓여진 물리적 흔적과 형태는 역사이기도 하지만 그곳에 담겨질 생활과 삶의 문화를 추정케하기 때문에 그 흔적과 형태가 드러나서 지속되어야 한다.
휴먼에이드포스트 2018.04.15 기사
서울 청계천과 바르셀로나의 방커드카멜 (Bunker del Carmel)
1930년대 후반의 스페인 내전 때 레지스탕스의 아지트였던 카멜방카언덕은 높은 곳에 위치한 덕에 바르셀로나 야경을 보려고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찾는 곳이다.
작년에 가족여행 갔을 때 바로셀로나에서 들러야 될 곳의 한 장소로 선정되 있었다. (둘째딸이 여행코스를 정해서 난 사전정보가 없던 상태로 갔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150여미터는 도로와 주변집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집들도 각기 개성이 있어서 구경삼아 재미있게 올라갔다. 꼭대기 즉 카멜방커언덕에 다다랐을 때 올라오는 길목과는 또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야경구경하기 좋은 언덕으로만 상상했었다)
폐허된 집터에 남아있는 벽체, 몸을 숨겨서 총을 쐈을 것 같은 작은 구멍이 뚫린 벽들, 용도를 잘 알수는 없으나 중정처럼 생겼을 것 같은 마당과 큰 구멍뚫린 벽으로 에워싼 곳, 곳곳에 산재해 있는 너럭바위 같은 큰 바위들... 그리고 땅 표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들어가면 토굴같으나 바르셀로나 시내를 향해 창들이 나있는 레지스탕스의 아지트.. 입구 계단을 감추는 철판을 덮으면 입구조차 찾을 수 없는 장치.. 그 내부는 옛날 아지트의 구조를 유지한 채로 최소한의 설명을 위한 장치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땅위의 다양한 형태의 구조물과 장소.. 또 땅속의 요새같은 생활근거지..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잘 드러나 있고 유지되므로써 당시 스페인 내전상황을 떠올리는 매개가 되는 장소임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런 곳에 가면 늘 머리에 떠오르는 곳이 서울의 청계천이다. 2000년대초에 당시 시장이 청계천 고가도로 철거하고 복개된 청계천을 원상태로 복원한다고 했다. 우연한 인연으로 청계고가의 철거작업 초반에 단국대 김정신교수와 학생들과 청계천 내부를 답사하게 되었다. 동대문에서 시작하여 청계1가까지 거슬러 올라오는 루트였다. 주의사항을 듣고 땅속으로 내려갔다. 아.. 여기가 어딘가.. 불과 4, 5미터 내려왔을 거 같은데 .. 청계천의 폭이 3, 40미터는 되어보이고 바닥에는 웬 거석들이그렇게 많이 널브러져 있는지.. 온몸에 전율이 감돌았다. 순식간에 시간이 5~600년 뒤로 간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너무 뜻밖의 장면을 맞닥뜨렸다. 15년쯤 지났음직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로마나 아테네의 어떤 폐허의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같은 것이었다. 오간수문(동대문 옆의 서울 성곽아래 위치해서 청계천의 물이 빠져나가는 곳이었다)의 기초로 쓰인 거석이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간수문이 있던 곳이라 폭이 넓다는 설명이 들려왔다. (그 오간수문은 위치도 다른 곳에 복원되어 있고, 그 기초돌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청계1가쪽으로 올라오는데 곳곳에 옛날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어떤 곳은 큰 바위를 주춧돌삼아 청계고가의 기둥이 세워져있고, 또 어떤 곳은 당시 청계천을 건너는 다리중 상판만 없고 바닥에 놓인 주춧돌과 그 위에 세워진 화강석기둥 대여섯개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곳 (광통교인지 모전교인지?)도 있었다. 그나마 청계천 복개공사때 철거했던 수표교는 원형을 유지한 채 장충단공원에 있다. 청계천의 홍수수위를 측정하는 수푯돌은 세종대왕기념관에 가있다고 한다.
군사정권시절이라 빨리빨리 고가도로 건설한다고 그 아래 청계천은 그대로 두었을 것으로 짐작해본다. 오히려 보존이 그런대로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당시 시장은 본인 임기내 빨리 완성한다고 이 모든 것을 걷어 치워버렸으니.. 그 몇백년의 흔적과 유산을! 서울, 아니 한양의 또다른 생활인프라를! 지금의 청계천은 도심지에 있는 물이 흐르는(그것도 한강에서 퍼오는 물과 약간의 인근 지하수) 분위기 좋은 공원에 불과하다. 청계천은 그런 곳이 아니다 !
한양의 생활중심지였고 물길의 흐름을 담당하는 중요한 600년 역사도시의 인프라였다. 서울은 지금 도시재생과 큰 틀을 짜는 중이다. 종묘와 창경궁연결, 서울 성곽회복을 비롯해 세운상가 리뉴얼 등등... 현재의 물리적인 환경 뿐 아니라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청계천도 리뉴얼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표교도 제자리를 찾고, 광통교인지 모전교인지 남아있던 다리의 기둥이나 오간수문의 기초 등의 유구도 제자리에서 드러나야 할 것이다. 물론 건축이나 도시시설물이 시대가 변하면 원래의 기능이 유지되기 어렵고 변할 수 있으나 그간에 쌓여진 물리적 흔적과 형태는 역사이기도 하지만 그곳에 담겨질 생활과 삶의 문화를 추정케하기 때문에 그 흔적과 형태가 드러나서 지속되어야 한다.
휴먼에이드포스트 2018.04.15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