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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길의 어제, 오늘

오섬훈
2018-11-05
조회수 562

피맛길의 어제, 오늘


종로통에서 한켜 뒤쪽에 있는 골목길, 서울시내 한복판에 70, 80년대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 이 곳은 피맛길...


조선시대 종로 시전거리에서 고관대작들이 말타고 행차할 때, 그 행차를 피해서 다닌다는 의미로 유래된 곳으로 빨리 동대문으로 빠져나가 도성을 벗어나는 지름길로도 사용됐다 한다. 그 옛날에도 종로통의 시장 뒷길로서 먹거리와 상점들이 있었던 곳이나 종로 1가쪽으로 쭉 올라가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재개발의 영향으로 바뀐 탓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북적거린다. 종로 1가쪽의 피맛길중 유명했던 곳이 열차집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과거 5.16혁명 전야에 그주역들이 여기와서 결기를 다진 곳이라고도 했다. 그 열차집은 지금 종로 2가 제일은행 근처에 옮겨서 영업하고 있다.


7, 8년 전에 종로1가, 2가쪽 피맛길 조성에 대한 현상설계가 있었다. 종로쪽의 재개발로 대형빌딩이 들어서게 되자 ‘전통적인 피맛길’에 대한 해결책이 주요 이슈가 되었다. 당시 오세훈 시장이 ‘디자인 서울’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서울의 외형적이고 시각적 단장에 관심을 갖던 시절이었다.


필자가 당선이 되어 현재 1, 2가쪽의 피맛길 기본구상을 이루게 되었다. 1, 2가쪽은 철거 재개발을 하게되었고, 그 후 3가, 4가쪽은 철거가 아닌 부분 리모델링 형태의 수복 재개발을 하는 방향으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서두에 말한 것처럼 3, 4가쪽의 피맛길 풍경과 1, 2가쪽이 다른 이유가 된 것이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원형보존의 문제와 보존을 하면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철거재개발은 어떻게 해야할지... 또 원형은 어떤 것인지. 3, 4가쪽은 피맛길의 원형을 보존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1, 2가쪽 현상설계 응모하면서 스터디한 결과는 다르다. 그 원형의 시점은 참 애매하다. 도시는 원형이 있는게 아니라 이벤트와 기억이 누적되어 형성되고 변모한다. 피맛길도 마찬가지이다. 그 일대의 지도, 수선전도부터 추적을 해보면 개략 5~6회 변화가 있었다. 조선초기, 중기, 일제시대, 60년대, 2000년대 초 등... 그 길의 형태와 폭이 조금씩 달라왔다. 다만 위치는 그대로 였지만. 그래서 피맛길같은 도시의 흐름 (정보나 상행위, 만남 등)을 담당하는 장소는 여러 이유로 변화한다. 그래서 현상설계에 다음 4가지 원칙을 담았다. 첫째는 600년 수도의 역사를 가진 곳 답게 그 피맛길 변화의 흔적을 드러낸다. 크게 변화가 생긴 세 시기의 흔적을 바닥에 돌점과 길과 상점들의 경계벽의 위치 등으로 나타냈다. 둘째는 피맛길에서 오랫동안 영업하고 유지해왔던 ‘열차집’같은 곳을 그야말로 원형을 그대로 살려서 그 자리에 지속적으로 유지되게 해주고, 셋째는 공사하다가 나온 유물과 유구는 그 자리에 작은 유물전시코너로 만든다. 예를 들어 지하바닥의 기초나 유구가 드러나면 그 위에 유리를 덮어 일상생활과 교류하게 한다. 넷째는 큰 블록단위의 개발로 인해서 생긴 피맛길의 단절을 이어주게 한다. 이런 네가지의 원칙으로 피맛길의 기본틀을 설계하고 만들어진 곳이 교보빌딩 앞 조경마당부터 종로 1가쪽에 형성된 현재의 피맛길이다.


얼마 전에 피맛길에 있던 서울장 여관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진화에 어려움이 많았다. 작은 골목길과 걷기 좋은 작은길, 골목길의 형태와 그곳에서 일어나는 행태 등에 대해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원형이라고 생각(착각)하는 익숙한 현재의 모습이 보존되는 것으로 자칫 그 장소가 활기가 없어지고 슬럼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도시안전측면 뿐 아니라 사회적 욕구에 따라 변화는 하되 그 장소의 역사적 기억의 유전자는 이어져 연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보다 더 다양한 모습의 흐름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고, 다층적인 새로운 장소(장소성)를 갖게 될 것이다.


휴먼에이드포스트 2018.03.13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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